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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보기      l 동명유래 l 전설/설화 l 미풍양속 l 기타향토사료
 
고산(孤山)

삼한시대부터 조그만 나라의 일부였다가 신라에 합쳐졌으며 신라 경덕왕(741년) 장산군(獐山郡) 읍서면(邑西面)이었는데 고려 현종(1018년)때는 경주군 서면에 속했고 고려 충선왕(1308년)때는 옥산부(玉山府)서면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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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물동(凡勿洞)

동네 명칭 유래에 대해 두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과거에 범이 많이 살고있으면서(실제로 과거에는 밤만 되면 밖으로 나갈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함) 계곡밑에 샘이 있어 범물동이라고 하는 설이 있고, 하나는 인근산(용지봉 약680m)위에서 내려다본 계곡의 형태가 '범(凡)'자 형태라서 범물동이라는 설도 있으나 둘다 확실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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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산동(池山洞)

지금으로부터 약 300년전 치산(淄山)고을 정우복 선생이 모산골밑 둔덕지에 골을 걸쳐막았는데 (현재 능인고 및 녹원맨션 자리) 못을 막아놓았으나 못에 물이 들어올 때가 없어서 산허리를 가로잘라 물이 고이게 했다고 하며 그후 그 없적으로 인해 용이되어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이러한 내력을 비석에 새겨 현.능인고등학교 자리에 보전하였으나 6.25사...(more)

 
두산동(斗山洞)

두산동은 대구부(大邱府) 수동면(守東面)지역으로 '말미' '말뫼'라 하였으며,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두산동(斗山洞)이라 하여 달성군 수성면(壽城面)에 편입되었다가 1938년 10월 1일 대구부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두산동 명칭은 말미산(독메산)이 있으므로 생...(more)

 
파동(巴洞)

예로부터 살기좋은 고장이라고 하여 '1파 2무'(첫째로 살기좋은 곳은 파동이며 둘째로 살기좋은 곳은 무태이다)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수려한 산수를 가지고 있던 마을로서 옛날 수성못 입구에서 가창까지 길이 곧다고 해서 '니리미'라고도 불리었으며 '파잠' '파집'이라고도 불리웠다.


 1...(more)

 
상동(上洞)

 신천을 사이에 두고 남구 봉덕동과 인접하고 있는 상동은 약500여년전 수성평야의 농막촌으로 형성된 마을로 진씨와 손씨가 집단거주를 했었다. 1394년 수성현에 속했는데 수성현이 대구현으로 편입되자 상동도 대구현의 일부가 되었다.


1910년 대구현이 대구군이 되고, 1910년 대구군이...(more)

 
중동(中洞)

약 500여년전 신천을 따라 수성평야에 형성된 마을로 80여년전 마을 규모는 경주이씨 160호, 추계 추씨 140호, 경주 최씨 53호, 초계변씨 50호 등 성씨별로 집성촌을 이루었으며 인구는 2,400명 정도로서 전 가구가 농업을 주업으로 하면서 거주하였다.


1394년 수성현에...(more)

 
황금동(黃金洞)

본래 대구부(大邱府) 수북면(守北面)의 지역으로 황청리(黃靑里)라 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으로 황청동(黃靑洞)이 되어 달성군(達城郡) 수성면(壽城面)에 편입되었으며, 1938년 10월 1일 대구부(大邱府)에 편입되었다.


 


약 3...(more)

 
만촌동(晩村洞)

만촌동은 본래의 이름은 '늦이'라 하였다.


'늦이'의 '늦'은 늦다(晩, 遲)라는 뜻이며 '이'는 원래 인칭대명사이나 고어의 '리(里)'의 음차(音借)로 보아야 한다.


이곳 주민들은 '늦이'를 한자로 지잉(遲芿)(遲=訓借, 芿=音借)로도 표기하였다...(more)

 
형제봉의 전설

2군사령부 동쪽에 두개의 산봉우리가 나란히 서 있는데 하나는 좀 높고 하나는 좀 낮아 사람들은 이것을 형제봉이라 부른다.


이 두 봉오리에 형제봉이란 이름이 붙게 된 것은 다음과 같은 전설 때문이다.


아득한 옛날 이곳에 힘센 장군 남녀가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둘...(more)

 
영험서린 느티나무

수성구 수성1가 옛날 대륜중고교 남쪽 담장밖에 서있는 아람드리 느티나무 두 그루는 수령이 4백여년이 넘는 것으로 오랜동안 동네 수호신으로 추앙받고 보호 받는 나무이다. 즉 이 느티나무 역시 어느동네의 그것처럼 당목으로 음력 정월 14일 제사를 지내왔다. 그러나 이나무 앞에서의 제사는 다른 동리의 그것보다 더욱 엄숙한 절차로 치러졌다. 제사는 먼...(more)

 
두사충(杜師忠)과 모명재(慕明齋)

 


대구시내에서 경산으로 통하는 대로변 오른쪽 형제봉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모명재는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에 원병으로 왔던 명나라 장수 두사충의 후손이 선조를 위해 세운 것이다. 두사충은 중국 두릉사람으로 임난이 일어나자 명나라 제독 이여송과 우리나라를 도우기 위해 나왔다. 그가 맡은 일은 수륙지획주사...(more)

 
고모령(顧母嶺) 전설
 옛날 고모령(顧母嶺) 부근에는 두 남매를 거느린 가난한 어머니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스님 한 분이 지나가면서 “전생의 공덕이 모자라서 가난을 벗지 못하는구나.”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날부터 세 식구가 산을 하나씩 쌓기로 하였다. 해가 뜰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일을 한 뒤, 산 높이를 비교해 보았다. 오빠가 쌓은 산이 가장 낮았...(more)
 
황금동의 못안과 봉천(奉天)

손홍량 어른이 죽은지 450년 쯤 '못안'과 뒷산너머 '봉천'에 이런 전설이 전하고 있다. 이곳 손씨 집안 어른 중에 손아무개라는 어른이 살았는데, 늦게사 아들 하나를 얻었다. 이 아들이 나이가 차서 장가를 보내기 위해 이 마을 저마을로 색시감을 구하러 다니다가 마침내 뒷산너머 마을에 이쁜 딸을 가진 김아무개라는 집안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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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 하광신(夏光臣)

수성구 만천동에 있응 하효자 정려각은 대구는 물론 경북지방 일원에서 가장 오래된 효자비의 하나로 고려때 이부시랑(吏部侍郞)을 지낸 하광신의 지극한 효성을 기리기위해 조정이 정문을 내려 세운 것이다.


하광신은 달성 하(夏)씨로 달성 하씨의 시조는 중국 송나라 대도독이었던 하흠(夏欽)...(more)

 
범어동(泛魚洞)

범어동은 본래 대구부 수북면의 지역으로서 조선때 범어역(泛魚驛)이 있었으므로 범어 또는 역촌(驛村)이라고 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달성군 수성면에 편입되었다가 1938년 10월 1일 대구구역아 확정됨에 따라 대구부에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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